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更新日:2022年9月22日 ページID:039305
소토메의 시쓰 취락은 잠복 크리스천이 독자적인 대상에 기도를 올리며 신앙을 이어왔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네 개 마을 가운데 하나입니다.
크리스트교를 믿는 것이 금지되었던 시기에 시쓰 취락의 잠복 크리스천은 자신들의 신앙을 숨겼습니다. 그들은 크리스트교에서 유래한 성화와 성상에 은밀히 기도를 올리고 교리가 적힌 책과 교회력에 의지하는 생활을 하며 신앙을 실천하였습니다.
또한, 많은 수의 잠복 크리스천 공동체가 이 지역에서 고토 열도와 같은 나가사키의 섬 지역으로 이주하였습니다.
크리스트교를 믿는 것이 허용된 뒤, 잠복 크리스천들은 단계적으로 가톨릭 교단에 소속되었습니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에 지어진 성당은 그들의 ‘잠복’이 끝났음을 상징합니다.
시쓰 성당과 옛 시쓰 구조원
1862년의 평면도로 시쓰 취락의 무덤이 지역 내 공동체마다 만들어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크리스트교를 믿는 것이 금지되었던 시기에는 무덤을 돌탑으로 만들지 않고 현지에서 나는 결정 편암을 포개어 쌓아 만들었습니다. 잠복 크리스천은 ‘머리를 남쪽으로 하고 무릎을 굽혀서 긴 관에 눕혀 매장하였다’고 전하여지는데, 노나카 무덤에서 이루어진 발굴ㆍ조사로 그 구전이 사실임이 밝혀졌습니다.
1 고타비라 무덤
2 쇼부다 무덤
3 노나카 무덤
4 하타쿠이 무덤
(촬영: 이케다 쓰토무)
시쓰 취락 안에는 성물이 여럿 감추어져 있었고 그를 향한 기도가 은밀히 이루어졌습니다. 그 물건들에는 16세기에 유럽에서 전하여졌다고 하는 성모 마리아가 새겨진 대형 청동 메달 〈원죄 없으신 성모〉 (현재 드 로 신부 기념관 소장)를 비롯하여, 촌장이 가지고 있던 동으로 만든 신선 상이었으나 예수회를 창시한 이그나티우스 로욜라로 여겨진 〈이낫쇼 님〉(소토메 역사 민속 자료관 소장), 그리고 〈성 미카엘〉과 〈열다섯 가지 신비〉 등의 수많은 그림이 있습니다. 1867년에는 〈성 미카엘〉과 〈열다섯 가지 가르침〉를 둘러싸고 그 소유권을 가톨릭 교단에 넘길 것인가로 교인들 사이에서 의견이 나뉘며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성화 〈성 미카엘〉 (나가사키 역사 문화 박물관)
성화 〈열다섯 가지 신비〉
* 이 두 성화의 원본은 시쓰 성당에서 우라카미 성당으로 옮겨간 뒤, 1945년에 원폭으로 소실되었습니다. 소실되기 전에 이를 모사한 그림이 남아 있습니다.
소토메의 시쓰 취락은 스모나다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시쓰 강 유역에 있습니다.
이 마을에는 다음 사적이 있습니다.
ㆍ잠복 크리스천이 크리스트교를 믿는 것이 금지되었던 시기에 은밀히 기도를 올리기 위하여 성화와 성상을 숨겨 두었던 주택 터
ㆍ잠복 크리스천의 무덤
ㆍ크리스트교를 믿는 것이 금지되었던 시기에 마을을 관할하던 관청 터(현재 옛 시쓰 구조원이 있는 자리)
ㆍ‘신도 발견’ 사건 이후, 크리스트교를 믿는 것이 아직 허용되지 않았던 시기에 선교사가 상륙한 바닷가
ㆍ크리스트교를 믿는 것이 허용된 직후에 세워진 임시 성당 터
ㆍ잠복 크리스천들의 독자적인 신앙생활이 끝을 맞이하였음을 상징하는 성당
소토메 시쓰 취락 안의 구성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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