ここから本文です。

소토메의 오노 취락

更新日:2022年9月22日 ページID:039306

신사에 은밀히 자신들의 신앙 대상을 모시어 기도를 올리며 신앙을 실천한 마을

外海の大野集落(空撮)

소토메 오노 취락의 가치

소토메의 오노 취락은 잠복 크리스천이 독자적인 대상에 기도를 올리며 신앙을 이어왔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네 개 마을 가운데 하나입니다.

크리스트교를 믿는 것이 금지되었던 시기에 오노 취락의 잠복 크리스천은 적어도 겉으로는 절이나 마을 안에 있는 신사의 신도였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들의 크리스트교 신앙 대상을 신사에 몰래 모시어 기도를 올리면서 신앙을 실천하여 나갔습니다. 

많은 수의 잠복 크리스천 공동체가 이 지역에서 고토 열도와 같은 나가사키의 섬 지역으로 이주하였습니다.

크리스트교를 믿는 것이 허용되고부터는 가톨릭 교단에 소속되어 소토메 시쓰 취락에 있는 시쓰 성당에 다녔습니다. 그 뒤, 오노 취락 중심에 성당이 세워지면서 그들의 ‘잠복’은 끝을 맞이하였습니다.

잠복 크리스천이 기도를 올린 세 곳의 신사

오노 신사는 1671년에 다시 지어지고 신체(神體)를 옮겼다는 기록으로 알 수 있듯이 크리스트교를 믿는 것이 금지되는 동안에도 취락에 존재한 신사입니다. 입구의 기둥 문은 1835년에 세워졌습니다. 오노 신사는 마을 전체를 수호하는 신을 모셨기에 오노 취락에 있는 세 신사 가운데서도 격이 가장 높았으며 대대로 신관을 촌장이 맡았습니다. 마을 주민 대다수가 오노 신사의 신도로 등록되어 있었는데, 오노 취락의 잠복 크리스천이 일본 전통 종교인 신도(神道) 신자로 가장하였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오노 신사보다 더욱 친숙한 신사였던 가도 신사와 쓰지 신사에도 기도를 올렸습니다.

원래 가도 신사에는 다양한 신들이 모셔져 있었는데, 1637년 시마바라ㆍ아마쿠사 봉기 때 오노 지역으로 도망 나온 혼다 도시미쓰라는 크리스천도 그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오무라 지역에서 1681년부터 1862년까지 이루어진 조사ㆍ기록에 쓰지 신사와 관련한 것이 적혀 있습니다. 쓰지 부락(크리스트교를 믿는 것이 금지되었던 때부터 있었던 부락) 사람들은 대대로 이 신사를 지켜왔습니다. 고대부터 있던 자연 숭배에 뿌리를 둔 산신을 모신 신사이지만, 잠복 크리스천은 그 제신을 자신들의 신앙 대상에 겹치어 보며 기도를 올렸습니다.

.大野神社
오노 신사
門神社
가도 신사
辻神社
쓰지 신사

잠복 크리스천의 묘지

오노 취락의 주민은 공동묘지에 묻혔습니다. 하지만 크리스트교를 믿는 것이 허용된 후에도 가톨릭 교단에 소속한 것을 공공연히 드러낸 사람은 촌장과 관리가 공동묘지에 묻히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에, 마을과 떨어진 곳에 새로이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그러한 무덤에서는 십자가나 메달, 묵주의 금속 부품이 출토되고 있습니다.

入道
돌을 겹쳐 쌓아 만든 가쿠레 키리시탄의 묘지

소토메의 오노 취락, 그 범위와 구성 요소

소토메의 오노 취락은 소토메의 시쓰 취락에서 북쪽으로 약 3km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오노 산 서쪽에 있는 스모나다 바다에 접하는 급경사지 위에 있습니다.

이 취락에는 세 곳의 신사(오노ㆍ가도ㆍ쓰지 신사), 잠복 크리스천 무덤, 그리고 잠복 크리스천 신앙의 전통이 끝을 맞이하였음을 상징하는 성당이 있습니다.

소토메 오노 취락 안의 구성 요소
外海の大野集落内の要素

お問い合わせ先

文化観光部 世界遺産室 

電話番号:095-829-1260

ファックス番号:095-829-1232

住所:〒850-8685 長崎市魚の町4-1(14階)

アンケート

アンケート

より良いホームページにするために、ご意見をお聞かせください。コメントを書く

観光案内

平和・原爆

国際情報

「2つの世界遺産があるまち」の分類